종교뉴스

“혼란할수록 가치가 더 중요하죠”


목록
종교뉴스

2월 둘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혼란할수록 가치가 더 중요하죠


157751e52a07a6a71159f92eba284c9b_1741324182_7.jpg
 

최근에 병원 생활을 하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하지만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결국 손에 들린 것은 신문이었고눈길이 머문 곳은 TV 뉴스였습니다화면 속 폭력적인 언행과 장면들은 양 진영 간 극한 대립과 충돌의 결과였습니다남북으로 나뉜 현실만으로도 억울한데 보수와 진보우파와 좌파의 극단적인 분열과 충돌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더욱이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오히려 정치인들이 선동하고 부추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정치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백성 혹은 국민의 안위와 행복그리고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정치인은 진보 진영이 되었건 보수 진영이 되었건 간에 국민의 행복과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이상과 가치를 펼쳐가야 합니다그것이 정치의 본질이자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그러한 이상과 가치를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오히려 그보다는 탐욕이 앞서는 것을 봅니다그리고 이러한 탐욕은 반드시 자기 우상화로 이어지게 됩니다자기 우상화란정치적 이상과 가치보다는 자기 이익을 앞세우며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자기 탐욕을 품게 되면 그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종교는 더욱 그렇습니다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가치그것을 위한 이상을 추구합니다다시 말해하나님의 뜻과 이상이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고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는 편협한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개인적 소신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가치이며 진리이기 때문이죠종교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든 리더는 개인적 신념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의선한 이미지메이킹을 고려하고그것이 공공의 윤리와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지 고민하며 행동합니다그런 의미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그리고 진실과 진리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지도자의 위치에서 가짜 뉴스나 거짓 정보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한동안 안토니오 그람시가 세운 동성애 전략에 곤혹을 치러야 했습니다안토니오 그람시는 문화적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 이론을 주장하며 교육미디어문화예술 분야를 장악하여 기독교와 같은 기존 도덕과 가치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검은 것도 열 번스무 번 반복해서 희다고 주장하면 결국 사람들은 그것을 희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동성애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안토니오 그람시 못지않게 심각한 괴벨스의 선동 전략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안토니오 그람시가 좌파 진영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네오막시즘적 사회를 이루려고 하였다면괴벨스와 같은 선동 전략은 오늘날 슈퍼 바이러스처럼 우리 사회에 파고들며 정치적 권력을 향한 탐욕의 영웅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장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라면 집단적 상처와 아픔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시대 속에서 교회 지도자들을 달콤하게 유혹하는 손짓이 있습니다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가치보다는 좌우 이념에 지나치게 편승하면서 어떤 사람을 설정해 두고 그것을 자기와 동일시하려고 합니다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가치를 품어야지왜 우리는 수많은 군중과 광장에 중독이 되려고 한단말입니까?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길 어귀와 광장을 좋아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광장보다는 광야를 선택하지 않았습니까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얼마든지 편파적일 수 있고때로는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아니저도 광장과 아스팔트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때는 동성애와 이슬람 스쿠크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한 공교회적 행보였지요저도 연말연시에 건강했더라면 불의를 못 이겨 욱하며 광장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발뒤꿈치 화상을 통해 저를 꽁꽁 묶어 놓으셨습니다.

 

문득 어지러운 이 시대에 집단적 상처 속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폴 리쾨르가 쓴 해석학의 갈등이라는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시대를 푸는 해석의 길은 어떤 시스템 혹은 이념이 아닌 유일한 진리(필자가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해석)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난감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지나친 정치적 워딩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어드레싱을 해야죠그런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때에 광장보다는 광야를 먼저 선택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령의 감동이 임할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그러나 목소리 역시 타락한 정치 혹은 이기적인 목적과 맞물려서는 안 됩니다더구나 자기 우상화와 얽혀져서는 안됩니다그러면 공교회 지도자가 아닌 사교(私敎)의 리더가 될 수 있지요역사를 되짚어 보면부패한 정치에는 타락한 종교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profile_image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국 언론의 중심을 잡고자 합니다. 혼탁한 뉴스시장에서 신속·정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로 한국 언론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자 노력합니다.